그룹명/생각하는 글.....

만화가 엄희자

아침이슬처럼~~~ 2017. 11. 3. 14:10

 한국 순정만화의 신화, 최초의 만화가 부부, 동양에서 온 천재만화가 커플.....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들에게 따라 다닌 수식어다.
엄희자, 조원기 부부.
한국의 60년대 만화계에 본격적으로 순정만화의 창을 연 엄희자, 그녀의 선배로서 명랑만화로 인기를 구가하던 조원기.
68년 이들이 결혼하면서 당대 최고이자 최초인 만화가 부부가 탄생하게 된다. 
그 이후 엄희자로 인해 순정만화가 대중화되면서 최고의 히트작인 <네자매>,<긴다리 아저씨>,<사랑의 집>등이 선을 보인다.
당시 만화방의 최고 작가로 군림하면서 이들 부부가 출판사를 옮기면서 받은 계약금이 1천만원이었는데,
당시 가수 이미자가 전속 레코드사를 옮기면서 받았던 이적료가 1천만원었으니, 이들의 인기를 가늠케 한다.  이후 70년대 중반까지는 이들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년잡지 <새소년>,<어깨동무>,<소년중앙>등이 생기면서 아동만화의 전성기가 열리게 된 것.  그러다 80년대 들어 이들은 한국에서 자취를 감춘다. 83년 미국으로 건너와 필르메이션 (Filmation)이라는 직원 6백명이 넘는 애니메이션 전문회사에서 일을 하다 지금은 없어진 캘리코 크리에이션(Calico Creation)로 옮겨 캐릭터 디자인과 스토리보드, 레이아웃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재능을 발휘하게 된다.
워너브라더스사의 애니메이션 ‘아이언 자이언트’(Iron Giant) 제작에도 참여했던 엄희자가 은퇴하면서 지금은 조원기 혼자 FOX TV의 애니메이션 부서에서 패밀리 가이 ‘Gamily Guy’ 스토리 보드를 구성하고 있다.
 ”40년 가까이 우리 부부가 늘 한팀이 돼서 같은 방에서 등을 맞대고 일했지요. 이제는 아이들까지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하니,행복하네요“
모처럼 부부가 두 트럭분이나 되던 원고들 중에서 몇권 남지 않은 그 시절의 작품을 꺼내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사진.글=백종춘 기자> 


 선배 동료이자 막역한 친구사이인 이영수씨와 그들의 손을 거쳐 탄생한
Family Guy ‘식구’들과 같이 포즈를 취했다.



  LA의 FOX TV 작업실에서 TV애니메이션 시리즈 ‘Family Guy’의 스토리보드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조원기씨.




  잘 나가던 젊은 시절에는 장안의 스타들만 출전(?)하던 TV 명랑운동회에도 나갔었다.
워낙 미모가 출중했던 지라 친구로 교류를 나누던 여배우들보다도 더 눈길을 끌었었다.

 

 
 
 

  전성기시절 두 트럭분이나 되던 원고들이 이민오면서 이제는 몇권의 책으로만 남았다.
얼마전 엄씨의 단행본이 한국의 TV쇼에서 350만원으로 감정가가 매겨졌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오랫만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 시절을 회상한다.

 

  주로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조원기씨의 명랑만화와
감성 풍부한 소녀가 등장했던 엄희자씨의 순정만화작품들. 

 

  눈망을 크고 상쾌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았던 엄희자씨와
명랑만화를 주로 그렸던 조원기씨 부부가 각자의 캐릭터 액자를 보여주고 있다. 
한방에서 등을 맞대고 일한 세월만도 40여년이다.


하지만 동네사람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엄희자 아닌 '조희자'로 산 세월이 벌써 또 20여년이
흘렀다.

주말 나들이를 앞두고 두 부부가 손잡고 나란히 집앞을 거닐고 있다.
5년전 은퇴했던 엄씨는 최근 아들의 강권(?)으로 다시 붓을 들었다.
이제는 순수회화로 동양화와 서양화를 아울러 그려볼 생각이라고.


  *편안한 이웃아저씨 조원기, 엄희자씨 부부는 그야말로 이웃동네에 사시는
    제 이웃아저씨,아주머니십니다.   제 아내와 식사도 하고, 우연히 마켓에서 만나는
    날에 제 아이들에게 케잌과 초콜렛도 안겨주시는 정말 멋있는 분들이시죠.  -백-

  *취재 당일 저녁 댁으로 찾아뵙고서는 거의 세시간동안 옛날 만화얘기로 꽃을 피우느라
   메모 한글자도 하지 못했습니다.  박기당, 이근철, 하고명, 하룡....... 초등학교시절
   만화방을 주름잡았던 우리 시절의 우상이었죠.


 

관련

저작자 표시컨텐츠변경비영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