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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인생, 우리 시대 신나게 사는 법

아침이슬처럼~~~ 2005. 10. 1. 23:41



신바람이란 자발적인 행복감이고, 살아있다는 기쁨이 저절로 우러나는 생동감이다. 억지로 명령한다고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발적인 행복감이라고 말해놓고 나니 2002년 월드컵 때의 온 국민적인 신바람을 잊을 수 없다. 그건 집단적인 신바람이었지만 누가 명령하거나 통제한 게 아닌 자발적인 신바람이 거리에 모여 폭발적인 환희를 분출한 우리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었다.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행복해지고 하던 일에 힘을 받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걸 보면, 그때 우리가 경험한 신바람은 기쁨인 동시에 창조적 에너지였다는 생각이 든다.

신바람하면 생각나는 게 전두환 정권 때 국풍(國風)이라는 관제 축제이다. 지금은 아마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는 이도 드물겠지만, 한마디로 웃기는 해프닝이었다. 온 국민이 옳지 못한 정권의 억압정치에 대한 분노와 굴욕감으로 깊은 실의에 빠졌을 때였다. 아무리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잡은 정권이지만 잡아놓고 보니 민심이 등 돌린 권좌가 얼마나 남루하다는 걸 뒤늦게나마 깨달았던지, 그래서 생각해낸 게 국민들에게 한바탕 잔치 마당을 벌여서 신바람을 내주자자는 것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아무도 신바람을 내지 않았고, 뒤에서 수근수근 욕만 하는 일회성 행사로 끝났다.



신바람은 자발적 행복감, 절로 우러나는 생동감

신바람이란 자발적인 행복감이고, 살아있다는 기쁨이 저절로 우러나는 생동감이다. 독재로 명령한다고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발적인 행복감이라고 말해놓고 나니 2002년 월드컵 때의 온 국민적인 신바람을 잊을 수 없다. 그건 집단적인 신바람이었지만 누가 명령하거나 통제한 게 아닌 자발적인 신바람이 거리에 모여 폭발적인 환희를 분출한 우리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었다.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행복해지고 하던 일에 힘을 받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걸 보면, 그때 우리가 경험한 신바람은 기쁨인 동시에 창조적 에너지였다는 생각이 든다. 농경시대에도 한바탕의 마을 축제가 일 년 동안의 고단한 노동과 자발적인 협동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듯이.

아파트에 살다가 지금은 교외의 땅 집에 산다. 지금 사는 집을 보고 한 눈에 반했다. 동네는 지금은 갈 수 없는 내 고향마을과 닮았고, 마당이 널찍해 채소와 일년초를 가꿀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척에 고향마을 뒷동산과 똑같이 생긴 밤나무 숲만 보고도 가슴이 울렁거렸다. 아파트가 일반화되기 전에는 한옥에 살았지만 마당이 넉넉한 집은 아니었다. 아파트로 처음 이사 갈 때는 연탄을 안 때게 된 것만으로도 꿈만 같았다. 중앙난방 말고도 아파트는 단독주택에 살 때 꿈도 못 꾸던 여러 가지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십년가까이 살고 나니까 느닷없이 그 편리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생길만큼 편리에 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 생애의 마지막 이사라는 각오로 산골짜기에 내가 손수 가꿀 만큼의 정원이 있는 집을 마련했는데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든다. 특히 요즈음 같은 한여름에는 잡초들의 생명력이 어찌나 왕성한지 매일 한 두 시간은 마당에서 보내지 않으면 잔디가 온통 그것들 차지가 된다. 왜 내가 원하는 것들은 잘 자라주지 않고 원하지 않는 것들은 씨 뿌린 바도 없는 게 저절로 생겨나가지고도 그렇게 쑥쑥 극성맞게 자라는지, 어떤 때는 너무 힘들어 내가 두 손 들고 저것들한테 지고 말지 할 적도 있다. 그러다가도 아침에 눈만 뜨면 누가 불러내는 것처럼 마당에 나가게 된다. 집안은 맨날 똑같지만 바깥의 자연은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자연과 함께 대화하며 살아있다는 기쁨 만끽

웃자란 잔디를 가지런하게 가위질 해주면 풀냄새가 어찌나 싱그럽게 풍기는지 저절로 심호흡을 하게 된다. 흙과 풀냄새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는 게 나에겐 보약 한 사발보다 더 힘이 된다. 그러면서 잔디를 못살게 구는 잡풀들도 뽑아주고, 간밤의 비에 넘어진 백일홍도 세워주고, 나팔꽃넝쿨이 타고 올라갈 끈도 매주고…. 손에 흙 묻히고 그런 일들을 하면서 새로 핀 꽃이나 웬일인지 더디게 피는 화초한테 중얼 중얼 말도 시킨다. 반갑다고, 아유 예쁘다고, 어서 힘내라고. 나의 하루의 첫 대화가 그것들과 함께인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나를 쉬지 못하게 하는 건 마당만이 아니다. 단독주택은 아파트와 달라서 구조상 잔걸음칠 일이 많다. 특히 우리 동네는 그린벨트 안이라 건축 상 규제가 많아 필요한 평수를 편안히 앉히지 못하고 아래 위층, 반 지하로 나눠서 설계했기 때문에 오르락내리락 할 일도 많다. 게다가 건망증까지 겹쳐 지하까지 내려가서도 서고에 책을 가지려 내려갔는지 김치냉장고에서 뭘 꺼내러 갔는지 생각이 안 난다. 그래서 한번 걸음 할 걸, 두 번 세 번 왔다 갔다 하게 된다.

집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게 버릇이 돼서 전화를 받을 때도 할 말이 많은 친구 전화면 무선전화기로 받고는 실컷 수다 떨면서 집안을 돌아다닌다. 요새 하도 걷기가 건강에 좋다고들 하길래 집안에서 만보계를 차고 일상적인 일을 해봤더니 내 나이에 권장하는 것 이상을 하루에 걷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신이 나서 우리 집의 불편과 나의 건망증을 사랑하면서, 부엌에서 욕실에 갈 때도, 잠 안 올 때 문단속을 다시 한 번 점검하러 돌아다닐 때도, 가슴 펴고 팔을 힘차게 휘젓고 걷는다.

땅 집에 살면서 대인관계도 많이 좋아졌다. 나는 천성적으로 낯가림이 심한 편이었다. 첫눈에 나하고 대화가 통할 것 같지 않은 사람하고는 침묵으로 일관해서 비사교적인 사람으로 통했고, 싫은 사람하고는 식사만 같이해도 체할 정도로 괴팍한 데가 있었다. 그런 인간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걸 알기 때문에 대인관계가 부자연스럽고 새로운 사람 만나는 걸 싫어하게 되었다. 남에게서 인간적인 약점이나 내가 싫어하는 점만 골라서 본다는 건, 우선 자신을 피곤하게 하고 그런 피곤이 쌓이면 불행이 된다.

자신에 대해서는 건망증까지 사랑할 정도로 너그러워진 주제에 남에 대해서는 조그만 결점도 못 참아줄 게 뭔가. 남의 약점보다는 장점 먼저 보는 건 고개를 까딱할 정도의 가벼운 사고(思考)의 전환만으로도 가능한 일이거늘, 그걸 왜 여태까지 못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남에게서 좋은 점 먼저 보면 우선 내가 행복해진다. 나의 여생을 최대한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다.<소설가 박완서님의 글>

 

소설가 박완서 님은1970년 장편 『나목』으로 여성동아를 통해 등단했다. 그의 작품세계는 막힘없는 유려한 문체와 일상과 인간관계에 대한 중년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현실적인 감각이 결합되어 더욱 빛을 발한다. 이상 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 문학상, 인촌상 등 다수 수상했으며, 장편 20편, 중단편 100여편, 산문집 여러 권이 있다.
 
가져온 곳: [無相의 世上萬事 塞翁之馬]  글쓴이: 無相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