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린이라는 이름 석 자가 만화 독자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척이나 각별하다. 흔히 김혜린을 무게감 있는 작품들을 그려낸 작가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작품의 무게란 단지 배경의 규모(스케일)로 재는 것이 아니다. 규모만이라면 지구를 몇 번이고 들어 엎고 쪼개는 작품들이 즐비한 판국이니 말이다. 많은 이들이 김혜린의 작품에 ‘무게감 있는’ 또는 ‘선 굵은’이란 수식어를 적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는 까닭은, 김혜린 표 작품이 단순히 무대가 되는 배경만 큰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 배경 속 시대와 사회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담으면서 그 거센 흐름 속에서 발버둥 치며 자기자신으로서 살아가려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깊이 있게 또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북유럽의 가상 국가 보드니아에서 일어나는 시민혁명을 그려 당시 운동권 학생들의 필독서가 되었던(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북해의 별>이나, 프랑스 대혁명 시기 로베스피에르의 산악파를 무너뜨린 혁명력 9일(1794년 7월 27일)의 온건파 쿠데타 ‘테르미도르 반동’을 그린 <테르미도르>, 원명 교체기 중국 대륙에 휘몰아쳤던 권력쟁탈전이 무대인 <비천무>,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던 시기의 부족 전쟁 과정을 그린 <불의 검>에 이르기까지, 김혜린의 작품들은 격렬한 시기와 그 시기를 살아가던 이들에게서 눈을 돌리질 않아 왔다. 게다가 <아라크노아>처럼 우주에 날아가든 <우리들의 성모님>에서처럼 광산촌에서 노동운동을 하든, 어느 시대를 무대로 삼더라도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이루는 사회와 제도 및 권력관계의 흐름을 짚어왔으며,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흐름에 휩쓸린 이들, 주류에서 벗어난(벗어나 있을 수밖에 없는) 이들, 또는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는 흐름을 바로잡고자 하는 이들에게 시선을 맞춘다.
김혜린이 그리는 만화의 매력은 바로 이렇듯 그저 단순히 굵직한 역사나 시대를 담아냈다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 안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인생과 그들의 고뇌를 시대 배경 속에 제대로 녹여내고 있다는 점에 있다. SF였든 대하 서사든 김혜린 만화의 중심은 인간 사회 그리고 그 사회의 틀거리 안에서 살아가며 좌충우돌하는 인간들이고, 그들을 둘러싼 ‘틀’이었으며, 나아가 ‘틀 안의 인간들’ 사이, 또 ‘틀과 인간’ 사이사이의 부대낌이었다. 김혜린이 독자들로 하여금 큰 이야기를 하는 작가로 각인된 건 이렇듯 단순한 무대와 배경 시대의 크기가 아닌 인간의 삶을 펼쳐놓을 줄 알기 때문이다.
“큰 이야기를 하는 거요? 사실 뻥을 잘 치는 거예요”
여기까지는 독자로서 팬으로서 사랑하는 작가에 관한 편애 가득한 소개. 그래서 지금껏 작품들을 보자면 ‘큰 이야기’를 하는 게 체질인 것 아니냐고 작가 본인에게 물어보니 정작 이렇게 말하며 껄껄 웃는다. “뻥을 잘 치는 거지 무슨……. 딱히 스케일이 크진 않잖아요? 세계를 날아다니면서 살인을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하하.”
인간을 화두로 삼는 작가를 만나보았으니 당연히 물어야 할 것이 인간관. 질문을 던지자 인간이 좋기도 하고 좀 징그럽기도 하단다.
“만화 속에선 이상적으로 다뤄진 부분이 있다고 스스로 판단을 해요. 그게 장점이기도 하면서 일종의 한계점이기도 하겠죠. 근데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사람은 딱 이렇다고 말할 순 없잖아요. 다양한 듯하면서도 비슷하기도 하고. 흔히 말하는 보편성과 개인의 특수성 같이 어우러져 있는 거니까. 그래서 인간이 참 좋기도 하고요. 좀 징그럽기도 하고 그래요. 그런 것들이 다 들어가 있죠, 제 작품엔. 좋은 인간도 나오지만 살다가 정말 만나고 싶지 않은 인간도 나오게 돼 있고.”
소프트한 이야기는 미처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김혜린은, 이야기의 규모에 관해선 “성향인 거죠”라며 이렇게 말한다. “작고 아담한 공간에서 아기자기하게 벌어지는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들을 하는 것보다 제가 이쪽(대하 서사)에 더 재미를 느낀다는 얘기기도 하고, 이쪽을 더 잘하는 것이기도 할 테고요. 제가 즐거워할 수 있고, 잘 할 수 있는 걸로 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그렇지 않은 걸 억지로 할 필요는 없는 것이고. 저보다 훨씬 잘하는 분들 많을 텐데. 성향인 거 같아요. 원래 초등학교 때부터 뻥을 많이 쳤는데……. 그 때도 글짓기 같은 걸 하긴 했었으니까요. 그런데 사극적 취향이라든지, 타고난 부분과 자라면서 형성되는 부분들이 자연스레 합쳐진 거 같아요. 굳이 꼭 서사적인 그런 게 아니더라도. 야사 스타일, <전설의 고향> 같은 거 좋아하고. 사극의 탈을 쓰면 좋아하는 걸 보면 어쩔 수 없는 취향이에요. 에픽극(epik : 서사극) 같은 거 극장에 나오면 보러 가거든요. 요즘은 잘 안 나오던데요. 만드는데 자금이 많이 들다 보니까. 그런 거 참 좋아하는데.”
그렇다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인간들을 주로 그려내는 데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변혁의 시기에 아무래도 좀 더 다양한 군상들이 나올 수 있겠고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겠죠. 평화로운 시기에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낼 재주는 없나 봐요. 좀 더 극적인 시기에 극적인 이야기가 좀 더 잘 떠오르든지, 그쪽에 흥미를 느끼는 게 있겠죠. 사회가 변화되는 시기는 정치적인 것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것 문화적인 것 모든 분야에서 전환이 일어나잖아요? 그게 흥미 있기도 하고요.”
“황미나 선생님한테 보낸 5장의 편지, 8장의 답장이 되어 왔죠”
김혜린은 1983년 <북해의 별>로 첫 데뷔를 했다. 올해로 데뷔 26년인 김혜린의 데뷔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본래 사범대를 다니고 있던 김혜린은 처음엔 만화가가 되겠다는 생각 없이 만화를 취미이자 오락으로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다 대학 2학년 초 무렵 여성만화가로 앞서 데뷔해 인기를 끌고 있던 황미나(1980년 <이오니아의 푸른별>로 데뷔)에게 편지를 보낸다. 당시 5장을 써서 보낸 편지는 8장짜리 답장이 되어 돌아왔다. “끄적거리는 거 좋아하고 낙서하는 거 좋아해서 그 두 개가 결합한 거죠. 그땐 만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딱히 하지 않았는데, 취미였죠. 대학에 들어가서 만화가란 것에 관해 생각을 했어요. 대학 1학년 초 정도? 그때 제가 진주에 있었고. 진주에 있으면서 황미나 선생님한테 편지를 보내서, 모르니까 여러 가지 질문을 했죠. 그 분도 그 때엔 꽃다운 나이(주: 황미나는 김혜린보다 1살 연상으로 당시 20대 초반이었음)셨기 때문에 답을 주시고. 제가 올라가서 만나 뵙기도 하고. 원고를 만들어서 가면 출판사 섭외를 해 주시기도 하고.” 이후 서울에 올라오면 밥도 함께 하고 황미나 화실에 묵기도 하면서 화실 분위기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한다.
“고마웠어요”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 김혜린. 하지만 누구에게 별도로 배운 것은 아니어서 시작은 미숙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어린 나이니까, 앞 뒤 생각할 거 없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까 덤벼든 거죠. 특별히 엄청난 계기라든지 그런 게 있었던 건 아니고요. 자연스럽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용감한 짓이었는지도 모르죠. 특별한 훈련을 한 상태도 아니고. 저 나름대로는 어릴 때부터 계속해서 쓰고 그렸던 게 훈련이었는지도 모르고. 굉장히 미숙한 상태로 시작했죠. 요즘 같으면 그런 상태로 시작은 못하겠지. 좀 더 전문적인 훈련을 했어야 하겠지만 그땐 80년대 초니까. 그렇게 해서 시작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전형적인 코스도 아니고 제 마인드도, 작품도 들쑥날쑥, 제가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말고. 편수가 많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저 자신은 즐기면서 한 셈이죠. 결국 하고 싶어서 한 거예요. 하고 싶어서 다들 할 수 있는 건 아닌데, 그렇게 치면 운이 좀 좋았던 거고요.” 만약 만화가가 안 되었다면 무엇을 했을까? 사범대를 다니다가 데뷔 후 그만두었던 김혜린은 만화가가 안 되었다면 교단에 섰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랬다 하더라도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는 계속 즐겼을 것 같단다.
당당하게 세상에 맞서는 김혜린 만화 속의 여성들
김혜린의 작품이 여성 독자들의 큰 호응을 끌어냈던 요인 가운데에는 ‘인간’과 더불어 ‘여성’이라는 화두를 작품의 중심에 끌고 들어왔다는 찬사가 한 몫을 했다. 요즘에야 순정만화의 순정(純情)이 여성 독자층을 대상으로 하는 장르를 일컫는 일반명사마냥 쓰이고 있는 편이지만 많은 순정만화가 여성이 그리고 읽으면서도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여성성을 답보하고 있었던 데 비해, 김혜린의 만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매우 당당하게 세상에 자기 발로 서고 맞선다. 다소 수동적인 여성성을 답보하던 <북해의 별>의 에델라이드를 지나 <비천무>의 설리나 <불의 검>의 아라와 소서노, <아라크노아>의 지나에 이르러서는 자기 의지를 분명히 하는 여성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독자들의 이러한 열광에 관해 작가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작가의 여성관을 물어보았다.
“제가 <북해의 별>을 5년여 했으니까 그 동안에 저 자신도 자랐고요. 어린 나이에 시작을 했으니까 당연히 이런저런 생각들도 자라죠. 바뀐다기보다 좀 자라고, 좀 더 생각하게 되고, 좀 더 느끼게 되고 그런 거 아닐까요? 설리가 여자들이 보기에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을 골고루 갖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은 해요. 소녀적인 것에서 여성으로 가고 있는 그런 단계. 그런 제 느낌들이 여자에게 투영되었겠죠. 계산해서 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저 자신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연스레 배어드는 것. ‘얘는 이런 애니까’ 하고 계산해서 캐릭터를 만들어 본 적은 없거든요. ‘어떤 인물이다’라고 하면 그 인물의 마음 속을 생각해 보죠. 제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환경이 있잖아요? 그 환경에서 이러이러하게 자랐을 적에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그런 점에서 <북해의 별>은 제가 어린 나이에 시작하면서 소녀적인 그런 게 들어가 있는 거고. <비천무> 같은 경우는 제 자신이 일종의 여성으로서 나타낸 부분이 있을 거예요. 계산서 써서 한 건 아니에요. 맨 처음 시작했다가 그 인물들 자신이 스스로 움직이게 되는 측면도 있어요. 그 안에서 세계가 만들어지잖아요. 제가 그리면서도 ‘넌 이러지 좀 마라~’ 그런 것도 생기죠. 하하. 첫 사랑에 목을 매다니 바보 같은 것! 이러기도 하고. 하하하.”
고려 말을 배경으로 한 신작 <인월>로 돌아오다
김혜린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기뻐할 만한 소식 하나. 《팝툰》 10월호부터 김혜린이 11년 만에 새로 시작하는 완전 신작 장편의 연재가 시작된다. 이름하여 <인월>. 필자의 개인 블로그에 이 소식과 함께 김혜린 인터뷰 소식을 전하자, 작가에게 전해달라며 도착한 편지와 덧글 가운데엔 현재 중단 상태인 <광야>와 <아라크노아>에 관한 ‘피 끓는 외침’이 여럿 있었다. 그 중 가장 눈길이 갔던 건 “<아라크노아>는 할 수 없더라도 <광야>는 뒷얘기를 꼭 그려주셔야 해요. 2권에서 얻어맞다가 끝났는데, 그 뒤를 그리지 않으면 앞으로도 영원히 고문 받고 있을 거 아녜요. 적어도 고문 받는 데선 꺼내주세요”라는 글. 먼저 연재 중단작에 관한 작가의 확실한 답변부터 전하고 신작 이야기를 마저 전하도록 하자. <아라크노아>는 손에서 떠났지만 <광야>는 ‘언젠가는’ 할 예정이라고 한다. <광야>에 관해선 “먹다 남은 가시처럼 걸려 있어요. 아프고 짜릿짜릿한 가시 있잖아요. 잊을 수 없는 가시처럼”이라고 말한다. 김혜린은 그 작품에 관해 잊지 않고 있고 언젠가는 할 거라고, 그걸 거기서 멈추기엔 너무 많이 남았고 너무 많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아라크노아>의 오랜 팬으로서는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광야> 팬은 앞으로도 희망을 놓지 않아도 되겠다.
그럼 신작인 <인월(引月)>은 어떤 작품일까. ‘달을 끌어들인다’라는 이번 작품은 고려 말을 배경으로 한 시대 사극으로, (일제시대 배경인 <광야>가 있긴 하지만) 돌고 돌아 드디어 김혜린이 한국의 옛 역사를 건드렸다 싶은 작품이다. 작가 본인은 그런 부분을 인식하진 못했다고 하지만 작품과 함께 북유럽에서 프랑스, 중국대륙과 만주 벌판을 내달렸던 독자들로서는 왠지 모르게 감개가 무량할 법도 한 대목이다.
‘인월’은, ‘날은 저물고 달은 뜨지 않아 더 이상 싸울 수 없게 되자 이성계가 달을 미리 뜨도록 끌어다 놓고 밤늦게까지 왜구가 하나도 안 남을 때까지 싸웠다’는, 요즘 식으로 치면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 식으로 통할 법한 황산대첩의 약간 과장된 전설에서 유래한 표현이다(비슷한 것으로 이성계가 바람을 끌고 다니며 싸웠다는 ‘인풍’도 있다. 둘 다 현재까지 지명으로 남았음). 김혜린은 이 단어를 고려 말 청춘극장풍으로 그릴 작품의 제목으로 붙여 ‘무모한 이야기’, ‘불가능한 꿈’ 같은 인상을 담아냈다. 예쁘고 짧으면서도 꿈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한 이 작품에 어울린다 여겼기 때문이라고. 구상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했다는 이번 작품에 관해 김혜린은 “이미 끝냈어야 하는 건데 이제 시작을 하고 있다”라면서 출판사(허브)를 많이 애 먹였다고 고백한다. 연재는 씨네21의 만화잡지 《팝툰》에서 진행하며 내년 3월경 단행본 1권을 발행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팝툰》은 10월호를 김혜린 특집호로 꾸며 뒷면을 광고 대신 <인월> 표지를 넣는 특별 편집을 예정하고 있기도 하다.
자료에 따르면 이번 작품은 고려 말인 1370년경에서 조선 개국시점인 1392년 무렵까지를 이야기의 시간배경으로, 남서해안 일대와 남원부, 개경 등지를 공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왕조 말기의 어지러운 사회상과 거듭되는 왜구들의 침탈, 신진 사대부들의 개혁 의지 등이 뒤얽힌 가운데 각자 다른 신분과 환경을 가진 젊은이들의 사랑과 갈등, 희망과 절망 등을 다룰 예정이라고 한다. 분량은 4권 가량이 될 것이라고 하니 김혜린 표 대하 서사에 목말랐던 이들이라면 기대를 해 봐도 좋을 듯하다.
추리소설, 록음악과 국악을 오가는 다양한 취향이 창작의 바탕
김혜린의 작업실에는 여타 만화가들의 작업실과는 또 다르게 다양한 자료와 더불어 만화책들이 책장을 한가득 채우고 있었다. 책장에는 생각 이상으로 다양한 장르의 책이 꽂혀 있었다. 국내 여성 작가들의 작품은 말할 것도 없고 <소년탐정 김전일>과 <베르세르크>와 <크르노 크루세이드>, <갤러리페이크>, <바람의 검심>, <후르츠 바스켓>과 <이누야샤>가 사이좋게 어울리고 있는 책장을 보고 있노라니 대하 서사물, 시대극, 여성 만화의 대가라는 인상으로만 생각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이뿐만이 아니라 김혜린은 “홈즈 전집, 작은 건 (집에) 있는데 애장판 전집이 나왔더라고요. 사서 모셔놓나 어쩌나~”라면서 들떠 하는 추리소설 팬이자 헤비메탈에서 하드록, 가요에서 국악, 트로트까지 종횡무진 오가는 음악 취향까지 지니고 있다. “요즘은 체력이 달려서 콘서트는 못 가요. 스탠딩할 자신이 없어요. 다음날 다다음날까지 후환이 두려워서…. 그래도 지금도 기타리프 들으면 우오오~하는데”라는 모습을 보면 문화 장르를 마음 가는대로 즐길 줄 아는 향유자였다. 그것도 엄청난 잡식. <아라크노아>의 기타맨 블라디미르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새삼 실감이 되는 대목이었다.
마지막으로, 워낙 오랜만에 작품을 들고 돌아오는 작가인지라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을 독자들에게 복귀 소감을 겸해 한 말씀 전하길 청했다. 다른 누구보다 김혜린이기에 인사말 한 마디가 더 의미가 있을 듯하다. “오랫동안 인사 못 드려서 죄송스럽습니다. 일단 독자들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제 스스로한테도. 왜냐면 제가 만화라는 걸 통해서 그 분들하고 소통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소통할 수 있는 걸 제가 내 드리지 못한 그런 데에 관한 아쉬움은 있죠. 활동을 하건 안 하건 제가 만화가인건 사실이니까. 앞으로도 그럴 거고. 지금 신작의 행로에 관해선 정확하게 말은 못하겠어요. 연재 건은 말할 수 있겠지만, 구체적인 부분은 아직 확정짓지 못한 부분도 없진 않아요. 그래서 작품이 자꾸 미뤄진 것도 있고. 하지만 전 앞으로 만화가겠죠. 입에 발린 소리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은 아직 못하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