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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의 " 빈집"

아침이슬처럼~~~ 2005. 10. 14. 23:06
 

 

 

문을 잠그고 나서는 순간, 아내의 빈 곳으로 그가 들어선다.

 

태석은 오토바이를 타고 집집을 돌며 열쇠구멍에 전단지를 붙인다.그리고 오랫동안 전단지가 떨어져 나가지 않은 집을 열고 들어가 얼마간을 살고 나온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던 태석은 어느 한 빈 집에서 멍 투성이의 한 여자를 만난다.

 

남편의 집착과 소유욕 때문에 피폐해지고 망가진 채로 유령처럼 살아가는 여자 선화. 하지만 태석은 그녀를 남겨둔 채 서둘러 집을 빠져 나온다. 그러나 자신을 데려가 주길 바라는 것 같던 선화의 공허한 눈빛을 떨쳐버릴 수가 없던 태석은 다시 그녀의 빈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태석은 남편의 강제적인 탐닉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선화를 보고야 만다. 참을 수 없는 광경 앞에 태석은 그만 손에 잡힌 3번 아이언 골프채를 휘둘러 선화를 구해 도망친다.

선화는 처음으로 자신이 비어있지 않은 집에 있는 것 같은 따스함을 느낀다.

 

태석 역시 조금씩 웃음을 찾아가는 선화를 보며 그녀에게 점점 끌리게 된다. 액체가 섞이듯 어느 사이엔가 서로의 아픔과 외로움을 느끼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에로틱한 카피와 포스터에 적절히 어울리게 굉장히 절제된(어울리지 않게가 아니다. 남발이 아닌 절제는 사물을 더욱 날카롭게 빛나게 한다), 그러면서도 많은 것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작중에 대사는 많지 않지만, 대화 없이도 인물들이, 그리고 관객과도 소통할 수 있었다. 화면에서 등장인물이 보여지는 위치와 구도만으로도 그 사람의 심리상태를 절묘하게 표출하는데는 혀를 내둘렀다.

 

전작 '나쁜 남자'에서 엄청난 실망감으로 지질나게 욕해주고 '절대 안본다!'를 외쳤기 때문일까? 기대없이 본 영화는 언제나 멋지다.

김기덕 감독 작품을 처음 만난 건, 수취인 불명이었다. 너무나도 아픈 사실들을 너무나도 덤덤하게 게다가 감각적으로 맛보여주기까지 하는 능력에 감탄했었다. 해안선은 보지 않았다. 나쁜 남자가 너무 끔찍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빈집은.... 최고였다. 전반적으로 주인공은 지독히 비일상적이지만, 그럼에도 일상에 녹아드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남자는 빈집에서 쉰다. 집은, 어차피 사람이 쉬고,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것인데, 사용되지 않는동안 그 남자가 사용하는 건, 어쩐지 죄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남자는 깨끗하게 빌려쓰고, 답례로 그집에 고장난 것들이나 무너진 균형들을 조금 정돈해 준다. 주인이 눈치채지 못할만큼만..(우렁총각이다--;) 그 온화함과 조용한 영향력이 좋았다. 수면의 장력처럼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거기 있는 힘.

우리가 우리 것이라 여기고 있는 것들이란 어차피 그렇게 빌려쓰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집에 있는 동안, 그 남자가 빈집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 집은 온전히 그를 위해서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가 한옥집의 붉은 소파에 기댈때도, 세상에 그렇게 아름다운 그림은 다시 없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곳은 분명히 그녀의 자리가 아닐지언데, 그 순간만을 위해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온전히 그녀의 것이었다. 그 순간 그녀만큼 그곳에 잘 어울린 사람은 없었다

그 남자는 물건을 고친다. 흐트러진 것을 바로 잡는다. 그 집에 고장난 건 그녀였다. 그 남자는 자기가 필요한 곳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도 그 남자에게 결핍된 걸 알았다. 그들은 서로에게 필요하지만, 아직은 제대로 맞지 않는 조각이었다.

 

그들은 서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서로를 믿고 기다렸다. 설사 그 믿음이 되돌아 오지 않는다해도. 마음을 지키며 기다리는 것 만으로, 그 인생은 얼마나 복될 것인가?


스스로를 강압적으로 납득시키고 싶어하는 남편따윈 알아주고 싶지 않다. 그남자의 단순함이 그 집착이, 그러면서도 또 순박한 마음이 인간답지만, 그럼에도 소통할 수 없는 타인이란 것이 슬프다.

내용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하고 싶지 않다. 보는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는 포용력과, 그러면서도 한곳만을 주시해서 만족을 느낄 정도를 두루 갖추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사람을 이해할 줄 알고, 사람에게 말을 걸줄 알고, 그리고 잘 만들어진 상품을 아름답게 포장해서 보일줄 아는 능력까지 갖췄다. 찬사를 보낸다.